[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12일 10대 대선공약의 첫 번째로 ‘경제 강국 만들기’를 내세우며 인공지능(AI) 산업을 집중 육성해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AI 관련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고 10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금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2호 공약으로 AI 강국 도약을 위해 AI 인재 20만명 양성을 내걸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7일 세종연구소는 ‘국방 인공지능(AI) 정책과 구현,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제14차 세종국방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미국의 국방 AI 정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국방획득체계가 당면한 문제를 제기한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은 “현행 국방획득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방 AI 적용은 예산만 낭비할 뿐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날 박 이사장은 “전체 획득 프로세스가 민수와 국방을 넘나들기 쉽게 유연하고 신속한 형태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AI를 외쳐대고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도 AI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면서 “미국은 AI 기술과 획득체계 혁신을 함께 추진하는데, 우리는 AI 기술만 쳐다보고 획득체계 혁신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제라도 AI 도입이 성과가 있으려면 국방획득체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 미국, 사업비 기준으로 획득사업 범주 구분하며 특성별 유연한 획득트랙 적용
박 이사장은 “획득체계를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구분해 별도의 조직과 절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미국은 총수명주기 관점에서 소요와 획득체계가 통합 연계되는 구조로서 사업비 기준으로 획득사업의 범주를 구분하는 데다, 사업 특성별 6개의 획득트랙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사업비 범주가 얼마냐에 따라 승인권자가 차관에서 국장급까지 달라지며, 사업 책임자(PM)가 하나의 사업 내에서도 다양한 획득트랙을 동시에 병행 추진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소프트웨어(SW)에 적합한 트랙의 비중을 높인 ‘적응형 획득체계’(AAF)로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AI 적용에 효율적이고 적합한 획득체계로 발전하고 있다. AAF의 가장 강조되는 변화는 SW 트랙 신설로, 체계의 최소요구기능(MVP)을 단기간(6개월 전후)에 구현한 후 시험적 배치와 운영 단계에서 사용자 피드백과 운영데이터 학습을 통해 수차례 반복 개발 절차를 거쳐 체계의 지능화 성숙도와 성능의 충족도를 높여가는 진화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AI 적용 체계개발은 최종사용자와 개발자, 사업관리자와 보안그룹으로 구성된 교차기능팀(CFT)이 개발 기간 내내 체계의 최종 요구성능을 도출하고 구현하면서 획득의 총 수명주기에 걸쳐 협업을 지속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처럼 사용자가 거의 배제된 채 개발자와 사업관리자에 의한 개발이 진행되고 소요기획과 획득, 운용 단계별 책임조직도 달라 국방부의 통합적 거버넌스가 미비한 획득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국방부에 AI 정책 컨트롤타워 만들고 SW 트랙 적용하는 적응형 획득체계 마련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방 AI 획득체계를 비교하면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우리는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구분해 법령, 업무절차, 예산체계, 담당조직이 이원화된 데 비해 미국은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의 엄밀한 구분 없이 사용자 중심의 체계개발과 운용이 가능하다. 둘째, 우리는 국방 AI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여러 조직으로 분산돼 있지만, 미국은 국방부에 AI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차관보급 조직인 ‘최고디지털인공지능국’(CDAO)이 설립돼 있어 연구개발 및 획득을 총괄하는 차관 조직과 매우 긴밀히 AI 획득을 책임지고 있다.
셋째, 우리는 SW 중심의 소요기획·개발을 위한 전용 획득 프로세스가 아직 미비한 상태이지만, 미국은 신속하고 유연하게 SW 트랙을 적용할 수 있는 적응형 획득체계가 마련돼 있다. 넷째, 우리는 국방 AI 사업도 기존 무기체계 사업과 같이 제안서 평가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나, 미국은 객관적인 성능 비교를 통해 단계별로 최적의 솔루션을 선택해가는 ‘챌린지형’ 경쟁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AI 도입에 필요한 국방획득체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국국방기술학회가 지난해 11월 완료한 국방부 연구용역 과제인 ‘AI 효율적 적용·활용을 위한 국방획득체계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지원체계의 한 분야인 정보화체계 사업이나 무기체계에 적용될 수 있는 SW 개발을 대상으로 AI 적용 획득사업에 대한 다양한 개선 방안들이 제안됐다. 이중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미국처럼 AI 정책 거버넌스 구축하고 체계종합(SI) 사업 구조에 변화 필요
먼저 국방부 중심의 AI 정책 거버넌스가 구축되고 이러한 AI 정책이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 모두를 아우르는 획득체계 거버넌스와 연계되어야 한다. AI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AI 기술 도입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AI에 특화된 의사결정 및 예산 집행 체계를 구축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연한 예산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무기체계 획득 방식인 체계종합(SI) 사업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 빠른 기술적 판단과 신속한 도입, 지속적 업데이트가 필요한 AI 획득사업은 SI 사업 구조와 일정 부분 맞지 않는 경향이 강해 이와 분리해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SW 개발 프로세스를 고려해 ① 챌린지 방식의 신규 사업유형 도입, ② 라이센스 비용구조 도입, ③ SW 대가산정 기준적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
첫째, 신규 사업유형으로는 ▲리더보드 기반의 챌린지 사업 ▲PoC(Proof of Concept) 개념 검증 사업 ▲벤치마킹 테스트 사업 등으로 국방정보화사업에 일차적으로 도입해 성공하면 추후 무기체계 사업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개발 종료 이후에도 짧은 주기로 업데이트와 성능개선이 계속 유지돼야 하는 AI 기술의 특성을 반영해 AI 기술 도입 시 초기 도입 비용과 함께 지속적인 라이선스 비용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라이선스 비용구조 도입’이 필요하다, 셋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SW 대가산정 가이드의 내용을 참고해 국방 AI의 특성에 맞게 ‘SW 대가산정 도입기준 적용’도 현실화돼야 한다.
■ 우리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획득제도 마련하고 관련 법규 제·개정 추진해야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 박 이사장은 ‘국방 AI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개선 방향’으로 “국방 AI 획득 표준모델 제시와 함께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의 경계를 허문 총수명주기 관점의 통합된 획득체계를 규정하는 ‘국방전력정책기본법’(가칭) 제정이 필요하고, 국방부 중심의 효율적인 조직 구축으로 신속한 변화 대응 및 협력적 문화를 조성하며, 구성원의 전문성 강화와 산·학·연에 친화적인 정책 및 시스템 개선으로 국방 AI 민군융합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한국국방기술학회의 앞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방획득체계와 AI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획득제도를 마련하고 관련 법규의 제·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그 방향은 민간의 혁신적 AI 기술과 방법론을 신속히 도입해 활용하면서도 국방의 특수성과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이런 노력이 하루빨리 현실화돼 국방 AI 적용에 적합한 국방획득체계가 조기에 정착되길 기대한다.
<원문보기 : 뉴스투데이 [방산 이슈 진단 (131)]>